2011년 7월 6일 수요일

에피큐어의 냉면이야기

냉면의 계절, 한식 중에서도 유난히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보기 드문 여름철 별미로 꼽혀 온 냉면이지만, 실상 아직도 많은 일반인들은 어렴풋이 구분은 할 지언정 여전히 미각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평양냉면집에서 비빔냉면을 시키고, 함흥냉면집에서 물냉면을 시키면서 이 맛이 아니라고 투덜거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면하면 평양식과 함흥식을 먼저 떠올리거나 혹은 그 이상에 대해서는 잘 모를 뿐 아니라 물냉면과 비빔냉면 정도로만 구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평양냉면과 함께 냉면의 양대산맥으로 불려왔던 진주식 냉면을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또한 평양식과 비슷하지만 메밀에 전분함량이 높아 탱탱한 면발이 특징인 황해도식 냉면을 구분할 줄 아는 이들은 더 더욱 드물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함흥식이 마치 함흥에 있는 냉면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식도락 선진국에 비해 우리 음식문화의 무지한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외식문화의 수준이 올라가고 식도락 인구가 급증한 현 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경계와 구분을 일반 식도락가들이 인지하고 제대로 된 냉면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냉면의 기원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먼저 차가운 국수라는 뜻의 냉면(冷麵)이 문헌에 나오는 시기는 조선 중엽인 17세기 초, 인조 때 활동한 장유의 계곡집(谿谷集)에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고 있다. 냉면의 원류는 먼저 평양식에서 찾을 수 있는 데, 평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메밀을 주재료로 사용한 물냉면으로 평양의 옥류관 냉면을 그 원형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메밀의 주산지인 평안도를 지칭하는 관서지방은 메밀과 밀, 녹두를 주재료로 칡, 마, 수수, 율무 등도 함께 사용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크게 메밀면과 동치미 국물 혹은 양지머리, 또는 꿩고기를 우린 육수를 차게 식혀서 먹는 냉면으로 관서지방식 국수로 이해하면 된다.

이에 반해 함흥식 냉면은 메밀이 아닌 고구마나 감자의 전분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주로 비빔이나 회를 올려서 먹는 냉면의 일종으로 함흥에는 존재하지 않는 냉면이다. 쉽게 설명하면 족보가 없는 서울 오장동 태생의 비빔 또는 회냉면으로, 당시 이북 피난들이 평양식 냉면으로 인기를 끌면서 이에 대항하여 함경도의 회국수를 기본으로 평양식 냉면에 맞서 이북식 취향으로 개발한 냉면으로 이해하면 된다. 마치 함흥에서 많이 먹는 전통적인 냉면으로 상술에 이용되었다는 부분이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한반도 이남에서는 냉면의 큰 부류로 성장한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조선의 양대 냉면으로 분류 되었던 진주식 냉면은 현재는 진주지역에서만 존재할 뿐 존재감이 약한 게 사실인데, 진주식 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화려한 고명과 해물육수를 사용하는 게 평양식과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양반문화, 교방문화가 발달한 진주에서는 인근의 산간지역에서 냉면의 주원료인 메밀 재배가 성행하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메밀국수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 메밀국수를 고급화하여 권력가나 재력가들이 냉면으로 개발하여 야참음식으로 즐겨 먹었던 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메밀가루에 고구마전분을 섞고 멸치(디포리)와 바지락, 홍합, 해삼, 전복, 석이버섯 등 해물을 이용한 장국을 차게 하고 배추김치를 채 썰고, 쇠고기육전, 오이, 배, 전복, 석이버섯, 황백지단을 고명으로 올려 내는 것이 진주냉면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진주와 사천 등지에만 진주식 냉면이 존재하지만 서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황해도식 냉면은 언뜻 평양식과 비슷하지만 메밀에 전분을 섞어 사용해 툭툭 끊어지는 평양식에 비해 면의 탄력이 남다르고, 그 지방 특유의 심심함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는 평양식의 영향을 받은 냉면으로, 이남에서는 양평군 일대에서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백령도에서도 여러군데 황해도식 냉면집이 있다.

그 외에도 임진왜란 후 흉년으로 기근이 들자 나라에서 메밀 재배를 권장하면서 즐겨 먹었던 강원도의 막국수, 피난민들이 남쪽지방에서는 귀한 메밀을 대신해 밀가루로 만들어 먹었던 부산의 밀면, 칡의 산지로 유명한 지리산 부근의 전라도 남원에서 칡전분과 밀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고, 양념장과 육수를 부어 먹으면서, 비빔면 외 물냉면에도 양념장을 넣어서 먹는 것이 특징인 칡냉면, 분식점냉면 혹은 마이너 냉면으로 불리는 서울식, 30여 년전 인천 중구 경동의 '광신제면'에서 냉면을 만들다가 우연히 한 가닥의 굵은 국수가락이 나왔는 데, 70년대초 인천 중구 인현동의 분식점 '맛나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던 노승희 씨가 면이 쫄깃쫄깃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처음 알려진 쫄면 등이 냉면의 부류로 이해하면 제대로 된 식도락을 즐길 수 있다.

( 2011년 6월 여름, 에피큐어(www.epicure.co.kr)의 냉면 이야기 )

평양식 냉면 - 우래옥, 봉피양, 을밀대, 을지면옥, 필동면옥, 서북면옥, 만포면옥, 의정부 평양면옥, 풍기 서부냉면, 대구 부산안면옥
함흥식 냉면 - 오장동의 오장동함흥냉면집, 흥남집
진주식 냉면 -  진주의 진주냉면, 사천 재건냉면
황해도식 냉면 - 양평 옥천면옥, 옥천고읍냉면, 안성 우정집, 대전 사리원면옥, 백령도 사곶냉면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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